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66

스가랴,
은 삼십에
팔린 목자

나귀 타고 오시는 겸손한 왕, 은 삼십에 팔린 목자,
그리고 그들이 찌른 그를 바라보는 날

스가랴 1–14장
여는 글

스가랴서는 구약 선지서 가운데 예수님의 고난 주간과 가장 많이 겹치는 책이에요. 😮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일, 유다가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판 일, 제자들이 흩어진 일, 창에 찔리신 일까지 스가랴서에 미리 나와요. 복음서 기자들은 고난 주간을 기록하며 스가랴서를 자꾸만 펼쳤어요.

그런데 스가랴서 앞부분은 또 전혀 달라요. 하룻밤에 여덟 가지 신비한 환상이 이어져요. 붉은 말을 탄 사람, 측량줄을 든 청년, 더러운 옷을 입은 대제사장, 순금 등잔대, 날아다니는 두루마리. 화석류 사이의 기수, 불 성곽, 그슬린 나무, 힘으로도 능력으로도, 나귀 타고 오시는 왕, 은 삼십, 그리고 찔린 이를 바라보는 날까지 따라가 볼게요.

1부

스가랴는 어떤 책일까?

성전 재건을 격려하며 오실 왕과 목자를 바라본 책

스가랴는 학개와 같은 해, 주전 520년(다리오 2년) 여덟째 달에 예언을 시작했어요(1:1). 학개가 시작한 지 두 달 뒤예요. 스가랴는 "잇도의 손자"로, 바벨론에서 돌아온 제사장 가문 출신이었어요(느 12:16). 1–8장은 성전 재건을 격려하는 여덟 가지 밤 환상과 메시지이고, 9–14장은 장차 오실 왕과 목자, 그리고 마지막 날에 대한 예언이에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무리 가운데 가장 길고 가장 신비로운 책이에요.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스가랴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는 뜻이에요. 구약에서 가장 흔한 이름 가운데 하나라서, 스가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서른 명 가까이 나와요. 침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도 같은 이름이에요.
고난 주간의 책나귀 타신 왕(9:9), 은 삼십(11:12-13), 찔린 이(12:10), 흩어진 양(13:7). 스가랴의 예언들이 고난 주간 이야기에 차례로 인용돼요.
스가랴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여덟 가지 밤 환상
1–6장에 하룻밤 동안 본 여덟 개의 환상이 이어져요.
2
대제사장과 총독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이 중요한 인물로 등장해요.
3
겸손한 왕
나귀를 타고 오시는 평화의 왕을 예언해요(9:9).
4
버림받은 목자
은 삼십에 팔리고 칼에 맞는 목자가 등장해요(11–13장).
5
여호와의 날
마지막 14장은 주님이 감람산에 서시는 날을 그려요.

스가랴서에서 가장 유명한 예언은 이것이에요.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9:9). 종려 주일, 그 예언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졌어요(마 21:4-5).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화석류 사이의 기수부터 찔린 이를 바라보는 날까지

1

골짜기 화석류 나무 사이의 붉은 말,
"어느 때까지"라는 질문

스가랴 1:7-17

스가랴는 한밤중에 환상을 봐요. "내가 밤에 보니 한 사람이 붉은 말을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붉은 말과 자줏빛 말과 백마가 있기로"(1:8). 화석류는 은매화(머틀)라는 향기로운 키 작은 나무예요. 에스더의 원래 이름 "하닷사"도 이 나무 이름이에요.

말 탄 자들은 온 땅을 두루 다녀 보고 보고해요.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1:11). 😮 그런데 그 평안이 문제였어요. 이방 나라들은 편안한데, 예루살렘은 여전히 폐허였어요. 그러자 여호와의 천사가 물어요.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 이를 노하신 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1:12). 예레미야가 예언한 70년이에요.

그러자 하나님의 대답이 와요.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1:14). "내가 불쌍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에 건축되리니"(1:16).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는 이름을 가진 선지자의 첫 환상이 바로 이거예요. 하나님은 70년 동안 잊으신 게 아니라 기억하고 계셨어요. "어느 때까지"라는 우리의 질문에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대답하세요.

돌아보기
"어느 때까지니이까" 묻고 싶은 기다림 속에서, 나를 결코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질투하는 사랑을 기억합니다.
2

성벽을 재려던 청년,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리라"

스가랴 2:1-13

두 번째 환상에서 스가랴는 측량줄을 손에 든 사람을 봐요. 예루살렘의 너비와 길이를 재러 가는 중이었어요(2:1-2).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으려면 먼저 재야 하니까요. 😊 그런데 천사가 달려가 그를 막아요.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성읍이 되리라"(2:4).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성벽으로 둘러쌀 수 없을 거라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2:5). 😮 돌 성벽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불 성벽이 되어 주시겠다는 거예요. 출애굽 때 불기둥으로 백성을 지키신 것처럼요.

흥미롭게도 70여 년 뒤 느헤미야는 실제로 돌 성벽을 52일 만에 쌓아요(느 6:15). 돌 성벽도 필요했어요. 하지만 스가랴는 그보다 더 큰 그림을 보여 줘요. 진짜 성벽은 하나님이시고, 그 성은 끝없이 넓어질 거라는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여요.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2:11). 이방 나라들까지 그 성으로 들어와요. 이 성은 결국 열두 문이 사방으로 열린 새 예루살렘(계 21:12-13)으로 이어져요.

돌아보기
내가 쌓은 돌담에만 의지하지 않고, 불로 나를 둘러싸시는 하나님을 나의 성벽으로 삼습니다.
3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대제사장 "예수아"가 받은 새 옷과 면류관

스가랴 3:1-10 · 6:11-13

네 번째 환상의 무대는 하늘 법정이에요.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서 있고, 그 오른쪽에서 사탄이 그를 고발하려 해요(3:1). 그런데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어요(3:3). 대제사장이 더러운 옷을 입었다는 것은 백성 전체의 죄를 보여 줘요. 고발할 거리가 충분했어요.

그때 하나님이 사탄을 꾸짖으세요.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3:2). 😮 불에 타 버릴 뻔한 것을 하나님이 꺼내셨다는 거예요. 1709년, 다섯 살 존 웨슬리는 불타는 목사관 2층에 갇혔다가 마지막 순간에 구출되었어요. 그는 평생 자신을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라고 불렀어요. 그리고 천사가 명령해요.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3:4). 정결한 관까지 씌워 줘요.

이어서 하나님은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고 하세요(3:8). 그리고 6장에서 스가랴는 금과 은으로 면류관을 만들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 말해요. "보라 싹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제사장이 되리니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6:12-13). 왕이면서 제사장인 분이에요. 그런데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예호슈아", 줄이면 "예수아"예요. 헬라어로 옮기면 "예수"예요. 😮 그슬린 나무를 꺼내고, 더러운 옷을 벗기고, 면류관을 쓰신 그 이름의 진짜 주인은 왕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세요(히 4:14).

※ "싹"(체마흐)은 예레미야 23:5, 33:15에서도 다윗의 자손 메시아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쓰여요.

돌아보기
사탄이 내 더러운 옷을 들어 고발할 때, 나를 불에서 꺼내시고 새 옷을 입히신 대제사장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4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작은 일의 날을 멸시하지 말라

스가랴 4:1-10

다섯 번째 환상에서 스가랴는 순금 등잔대를 봐요. 등잔대 양옆에 감람나무 두 그루가 서서 등잔에 기름을 계속 공급하고 있었어요(4:2-3). 😮 사람이 기름을 부을 필요가 없는 등잔대예요. 스가랴가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천사가 총독 스룹바벨에게 주시는 말씀을 전해요.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4:6). 성전 재건은 군대의 힘이나 사람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산 같은 장애물도 하나님 앞에서는 평지가 될 거라고 하세요(4:7).

그리고 또 하나의 보석 같은 말씀이 있어요.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4:10). 😊 초라한 성전 공사를 보며 "이게 무슨 성전이냐"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총독이 다림줄을 들고 벽이 바로 섰는지 재는 그 작은 모습을 보며 기뻐하신다고 하세요. 작은 시작을 멸시하지 마세요. 겨자씨 한 알로 시작하는 하나님 나라는 성령으로 자라요(마 13: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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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힘과 능력이 아니라 성령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오늘의 작은 시작을 멸시하지 않습니다.
5

군마가 아니라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시는 왕,
종려 주일의 예언

스가랴 9:9-10 · 마태복음 21:1-11 · 요한복음 12:14-16

스가랴 9장에서 예언의 분위기가 바뀌어요.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9:9).

😮 정복자 왕은 보통 전쟁 말을 타고 성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이 왕은 짐을 나르는 나귀, 그것도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오세요. 그리고 바로 다음 절에서 이 왕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어지리라"(9:10). 전쟁을 하러 오는 왕이 아니라 전쟁을 끝내러 오는 평화의 왕이에요.

500년 뒤 종려 주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귀를 끌어오게 하시고 그것을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어요. 마태는 이 장면에 스가랴 9:9를 그대로 인용해요(마 21:5). 재밌게도 마태는 "나귀와 나귀 새끼"를 함께 끌어왔다고 기록해요(마 21:7). 😄 히브리 시의 반복 표현을 따라 어미 나귀와 새끼를 함께 데려온 거예요. 요한은 제자들이 그때는 이 일을 깨닫지 못하다가 예수님이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기억했다고 솔직히 적어요(요 12:16). 백성은 종려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외쳤지만, 그 왕이 가시는 길은 평화를 위해 십자가로 가는 길이었어요.

돌아보기
내가 기대하는 강한 왕의 모습이 아니라, 나귀 새끼를 타고 겸손히 오시는 평화의 왕을 내 마음에 모십니다.
6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
성전 토기장이에게 던져진 은 삼십

스가랴 11:4-13 · 마태복음 26:14-16 · 27:3-10 · 출애굽기 21:32

스가랴 11장에서 스가랴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잡혀 죽을 양 떼"의 목자 역할을 해요. 그런데 양 떼와 그 주인들이 목자를 싫어했어요. 스가랴는 목자 일을 그만두며 말해요.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으로 삼은지라"(11:12).

은 삼십 세겔이 얼마나 될까요? 약 342그램, 오늘 은 시세(2026년 10월 초, 1그램 약 2,700원)로 92만 원쯤이에요. 그런데 이 금액에는 숨은 의미가 있어요. 출애굽기 21:32에 따르면, 소가 남의 종을 받아 죽게 했을 때 주인에게 물어 주는 값이 은 삼십 세겔이었어요. 😮 종 한 사람의 목숨값이에요. 백성은 하나님이 보내신 목자의 수고를 종 한 사람 값으로 매긴 거예요.

하나님의 반응에 비꼼이 담겨 있어요.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11:13).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그들이 나를 평가한 그 훌륭한 값"이에요. 😏 그리고 스가랴는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져요. 500년 뒤,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에게서 은 삼십을 받고 예수님을 넘겨줬어요(마 26:15). 그리고 뉘우치며 그 돈을 성전에 던졌고, 대제사장들은 그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샀어요(마 27:5-7). 종 한 사람 값에 팔리신 그분은 종의 형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어요(빌 2:7).

※ 마태복음 27:9은 이 예언을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라고 소개해요. 예레미야가 토기장이의 집에 간 일(렘 18–19장)과 밭을 산 일(렘 32장)을 함께 떠올리게 하려는 것으로 보는 해석이 많아요.

돌아보기
나는 예수님을 얼마로 평가하고 있는지 돌아보며, 종의 값에 팔리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주님을 가장 귀하게 여깁니다.
7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리라

스가랴 12:10 · 13:1, 7 · 14:4, 20 · 요한복음 19:37 · 마태복음 26:31

스가랴서 마지막 부분에는 신비로운 예언들이 이어져요.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12:10). 😮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 "그들이 찌른 나"를 바라본다고 하세요. 하나님이 찔리신다니요.

요한은 로마 군인이 십자가 위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장면을 기록하며 이 구절을 인용해요.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요 19:37). 그리고 이어서 약속이 나와요.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13:1). 찔린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어요(요 19:34).

그리고 13:7.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예수님은 체포되시기 직전 감람산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셨어요(마 26:31). 그날 밤 제자들은 정말 다 흩어졌어요. 그리고 14장에서 주님은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14:4). 예수님이 승천하신 바로 그 산이에요(행 1:11-12). 스가랴서의 마지막 장면은 이래요.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14:20). 😊 대제사장 이마에만 새겼던 "여호와께 성결"이 말 방울에까지, 부엌 솥에까지 새겨지는 날이에요.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찔리신 목자, 예수 그리스도세요.

돌아보기
내 죄 때문에 찔리신 그분을 바라보며 애통하고, 그 상처에서 열린 샘으로 날마다 씻김을 받으며 삶의 모든 것을 주께 드립니다.
맺는 글
찔리신 목자가
평화의 왕이 되셨다

스가랴서는 무너진 성전을 다시 짓던 작은 공동체를 격려하며 시작해요. 힘으로도 능력으로도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작은 일의 날을 멸시하지 말고. 그런데 그 격려는 점점 더 큰 그림으로 넓어져요. 나귀 타고 오시는 왕, 은 삼십에 팔린 목자, 찔리신 분, 흩어진 양 떼, 그리고 감람산에 서실 주님이에요.

복음서 기자들이 고난 주간을 기록하며 스가랴서를 펼쳤던 이유가 여기 있어요. 스가랴가 본 겸손한 왕과 버림받은 목자와 찔리신 분은 모두 한 분이었어요. 우리를 위해 찔리시고 다시 오실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세요.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9:9)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